불치하문(不恥下問)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 불치하문(不恥下問)과 공자천주(孔子穿珠)
마음의 창을 열고
2016.06.1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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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의 대부(大夫)인 공어(孔圄)는
욕심(慾心)이 많고
?충성심(忠誠心)도 부족(不足)한
인물(人物)이었음에도 불구(不拘)하고
시호(諡號)가 문(文)으로 사람들은
공문자(孔文子)라고 불렀습니다.
?
시호(諡號)는 생전(生前)의 언행(言行)과
공적(功績)에 의(依)하여 정(定)해지며,
문(文)이라는 시호(諡號)는 가장 높은
단계(段階)의 것이었으므로
자공(子貢)이 이해(理解)하기 어려워 공자(孔子)께
물었습니다.
子貢問曰 孔文子何以謂之文也?
자공문왈 공문자하이위지문야?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지문야
자공(子貢)이 묻기를,
공문자(孔文子)는 어찌하여 문(文)이라고 부릅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그는 영민(英敏)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자기(自己)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를 문(文)이라고 한 것이다.
【논어(論語)】 【공야장편(公冶長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기에서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고사(故事)가
나왔는데,
무릇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록 지위(地位)가 낮거나
자신(自身)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基本的)이면서도
훌륭한 자세(姿勢)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자기(自己)가 모르는 것을 알 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신분(身分)이나 지위(地位)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자신(自身)이 모르는 것을
기꺼이 물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송(宋)나라 목암선경(睦庵善卿)이 편찬(編纂)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는
실제(實際)로 공자(孔子) 스스로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姿勢)를 실천(實踐)한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고사(故事)가 나옵니다.
世傳 孔子厄於陣 穿九曲珠 遇桑間女子
세전 공자액어진 천구곡주 우상간여자
授之以訣云 密爾思之 思之密爾
수지이결운 밀이사지 사지밀이
孔子遂曉 乃以絲繫蟻 引之以蜜而穿之
공자수효 내이사계의 인지이밀이천지
공자(孔子)가 진(陣)나라를 지나갈 때 일입니다.
공자(孔子)는 어떤 사람에게서 진기(珍奇)한 구슬을 얻었는데,
이 구슬의 구멍이 아홉구비로 되어 있었으므로
여러 방법(方法)을 다 써 보았지만 실을 꿸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바느질하는 아낙네들이라면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뽕밭에서 일하던 아낙네에게 그 방법(方法)을
물어보았습니다.
공자(孔子)의 이야기를 들은 그 아낙네의 대답(對答)이
『密爾思之 思之密爾(밀이사지 사지밀이)』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라, 생각을 조용히 하라』는 뜻인데,
공자(孔子)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번뜩 그 의미(意味)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발음(發音)인 ?밀(蜜), 곧 꿀!!!
『찬찬히 꿀(蜜)을 두고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공자(孔子)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넣은 다음
반대편(反對便)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구불구불한 구멍을 지나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오게 되어
드디어 구슬에 실을 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대(當代) 최고(最高)의 지식인(知識人)이었던 공자(孔子)도
모르는 것의 답(答)을 찾으려고
신분(身分)이 낮고 배움이 적은 아낙네에게
거리낌 없이 물었던
것인데,
이 이야기에서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고사(故事)가
나왔으며
불치하문(不恥下問)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로
?공자(孔子)가 몸소 실천(實踐)한
불치하문(不恥下問) 사례(事例)의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關聯)하여 뜻을 같이하는 말로는
【송서(宋書)】 【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경당문노 직당문비(耕當問奴 織當問婢)』가
있습니다.
『농사(農事) 짓는 일은 머슴에게 물어야 하고,
베 짜는 일은 계집종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는
배움의 자세(姿勢)에 대(對)한 핵심(核心)을
표현(表現)한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옵니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자왈 삼인행 필유아사언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못한 점을 골라 그것을
바로잡는다.
이 말은 반드시 어디를 갈 때 뿐만 아니라,
함께 행동(行動)할 때를 이르는 말로
좋은 것은 따르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며,
하찮은 것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도
포함(包含)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바탕이 되는 말이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에 나옵니다.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견현사제언 견불현이내자성야
착한 것을 보면 같기를 생각하고,
착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안으로 스스로 살핀다
공자(孔子)는 이와같이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신분(身分)의 높고 낮음 따위에 관계(關係)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착한 행실(行實)은 따르고,
남의 악(惡)한 행실(行實)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 것인데,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의미(意味)겠지요.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는
공자(孔子)께서도 평생(平生)을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姿勢)로
부지런히 배움을 실천(實踐)하였음을 말하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 민이구지자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되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