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비교.◆

중산층이란,
중간계급의 다른 표현이며
재산의 소유정도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중간인
소자산 계급이다.
부유한 계층과 빈곤계층의 중간에 위치하며
건전한 사회일수록
중산층의 두께가
가장
두껍다.
그래서
허리부분이 튀어나온 항아리모양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형태라는
비유까지
있을정도다.
지금도
대부분의 선진국은
항아리 모양을 하고있지만
빈곤국가 일수록 역삼각형의
형태로
소수 부유층의 자산이
다수 빈곤계층의 자산에 비해
수백, 수천배가
많다.
따라서
중산층이 탄탄하게 자리잡은 사회는
정치적 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역삼각형의 빈곤국가는
항상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이 함께
상존 하고 있다.
이런 국가일수록 정변이 잦으며
군에의한 쿠데타도 빈번한
편이다.
때문에
모든 국가들은 중산층의 확대와
그
안정을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
두며
견고한 중산층을 육성하기위해 애쓰고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다수의 선진국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우리한국의 중산층은 어떤 모습을
하고있을까.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각종 통계에서
스스로를
중산층 이라고 답변한
사람들이
70%정도였으나 최근에는 50%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살기가 팍팍해 졌다는 뜻도있지만
심리적 중산층과 경제적 현실이
다른것도 이유일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전국의 성인남여 817명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중산층의 모습과
실제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지난 6월12일에
발표했다.
이번조사에서 응답자의 51.2%가
스스로를 중산층 이라고
생각했으며
고소득층 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0.6%에
불과했다.
반면
저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은
48.1%였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중산층의
모습은,
월 수입이 515만원 정도여야
하며,
이중 341만원정도를 쓸수 있어야
하고,
약 35평크기의 주거에
6억 6000만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자가용 승용차는
물론,
회당 12만원상당의 외식을
한달에 네 번정도 즐길수 있어야 하며
소득의 2.5%는
기부금으로
낼수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이상적인 중상층의 실제는
어떨까.
응답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416만원
이었으며
외식비 18만원을 포함,
월 지출은 평균 252만원
이었다.
순자산도 3억8000만원으로
이상형의 57.6%에
그쳤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번조사는,
모두가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것들이
기준이었다.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고,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등
모든 응답이
숫자가 기준이 되는 것은

아직
우리의 중산층이
그 역사가 일천하고
내용적인 조사를
할수 없었다는데도
이유가 있지만,
증산층을 자차하는 사람들도
‘무엇’ 보다는 ‘얼마’ 로 자기를 평가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중산층은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모두 평가할 수는
없다.
‘삶의질’ 이
더 중요한 중산층의 조건이
될수도있다.
인간의 생활은
‘빵’ 만으로 다 설명할수 없는
다양하고 심층적인 측면들이
있다.
단지
돈많은 사람이
더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세상에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한국의 소득상위권의 내용에대해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연교수의
논문
내용을 일부발췌,
설명해보자.
그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2012년현재 소득상위 1%가
전체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에서 소득불균형이 가장심한
미국에 육박하는
수치(48.16%)이며
일본(40.5%), 프랑스(32.6%) 보다 훨씬높은
수치다.
한편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2000년 이후
계속적으로
상승한 국가는 미국과
한국정도다.
한국의 상위10%의 소득비중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고
있으며,
그 이전까지는
7%정도에 머물던 상위1%의 소득비중도
2005년
10%를 돌파한
이후 계속 올라가고
있다.
말하자면
1997년의 외환위기가
한국에서
소득불균형이 시작된 기원으로 작용한
것이 된다.
김교수는 통계청이 발표한
지니계수의 문제점을 지적, 이를
보정했으며
그가발표한 지니계수는 0.372로서
통계청의 0.314보다
높았다.
(지니계수의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정도는
심화된다.)
상위 1%나 10%가 차지하는
소득비중이 높을수록
그만큼 중산층이 압박을 받는
것과 함께
빈곤층이 증가하는 것은 경제원칙 이기도
하다.

중산층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도
상위계층의
소득증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프랑스나 미국, 영국같은
서구선진국의 중산층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이는
앞으로의 ‘삶의질’을 위해
반드시 살펴 봐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중산층의
내용은,
우선 외국어
한가지 정도는 구사할수 있어야
하며,
직접 즐기는 스포츠 종목도 있어야 한다.
악기 하나정도는 다룰줄 알아야
하고,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페어풀레이를 중시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된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서구 선진국 중산층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은 경제적부문
보다는
‘가치관’ 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중산층이
매 달리고 있는 수치에서는
이미 벗어났다는
얘기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도
‘경제’에서 ‘가치관’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인류가 그렇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소득불균형이 가져오는
사회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소득층, 빈곤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없이는
사회불안문제를 해소
하기
어렵다.
사회복지문제가
중요해 지는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면에서
우리와 자주 비교되고있는
미국의 형편을
살펴보자.
미국의 시사경제지
타임은,
‘거의 절반에 이르는 미국인들이
하루벌어
하루먹고사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당장의 생존 때문에
미래를 위한 계획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지속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꾀해야 하는
상태에 처해있다‘
는
미국기업개발공사의 보고서를
인용보도했다.
그리고 이들은,
‘유동자산열악’ 등급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미국인 절반의 삶은
어떤가.
그들 대부분은,
즉 미국인 전체의 44%가
4인가족 기준
가구당 평균 5887달러의
유동자산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우리돈으로
1인당 150만원도 채 안되는
금액이다.
기업개발공사는
이런 재정적 불안상태는
단지
저소득층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중산층가구의 약25%가
‘유동자산열악’ 등급에 속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에서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고작 전체의 5%도 안된다는
얘기다.
‘미국사회보장국’
이
2013년 11월초 분석에
의하면,
연봉3만불(약 3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전체미국인의 53.2%보다
더 버는 사람이며
이들이
곧 미국인의 평균소득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보건복지부의 연방빈곤지침을
보면,
2012년 4인가구의 가구소득은
2만7010달러(약2700만원)로서
이는
미국인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선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바 있는
미국드라마
‘다운턴애비-Downton Abbey'
는
1920년대
영국 한 귀족가문의 고급저택과
그곳에 거주하는
하인들의 삶을 그린
내용이다.
물리적으로만 비교한다면
지금의
미국 중산층을 드라마에 등장하는
하인들의 생활과 비교해볼 때
결코
더 나을게 없다는
비판적인 드라마이기도
하다.

우선,
하인들은 해고가 없는
평생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다음,
그들이 하는 일은 그 특성상
외주-아웃소싱이
불가능하다.
주인들은
직장의 상사들 보다 더
인간적이고,
큰 저택에서
주인과 함께 살기 때문에 출퇴근이
없다.
그들은
주인에게 만들어 주는 좋은 음식을
먹고살며,
주거환경도 좋고
세금이나 주택보험도 없이
주인이 가지고 있는 화려한
숙박시설을 무료로 이용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짜증나는 서류작업도
없다.
1920년대 하인들의 처지가
지금의
미국 중산층보다 낫다는 비판은
미국중산층의 위치와 몰락을 경고하는
의미도 함께 함축하고
있다.
어떤면 에서는
미국의 중산층은
우리나라 중산층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듯이
보인다.
그만큼
전에비해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유럽쪽 중산층이
뿌리도 깊고 자산도 많고
삶의질에서
아메리카를 압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양키’를 은근히 깔보는 바탕에는
이런
역사적인 우월감도 있는
것이다.
이제
유럽쪽 중산층을 기준으로
‘삶의 질’을 살펴보자.
특히
스스로 중산층임을 자임한다면
더 신중하게 검토,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외국어의 경우
지금의
우리중산층은 거의 모두가
영어를 구사할수
있다.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화도
가능하다.
스포츠의 경우,
단순히 즐기는것과
자기가 직접 그 종목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프로의 수준까지
갈 수 있는 정도라야 된다는
얘기다.
우리중산층은
아직
그 수준에서는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악기의 경우,
피아노학원도 많고,
피아노를 배우는 애들도
많다.
그러나
거의모든 중산층가정은
그 일상안에 악기연주가 없는게
현실이다.
피아노와 피아노학원은 장식품인
것이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 했던
전통문화에서 ‘요리하는 남자’ 는
보편적일수
없었다.
그러나 요지음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자기의
‘18번’
하나는 가지고 있으라는 얘기다.
우리는 아직
일반적으로 환경에 대해 예민한 관심을
가지고있지 못한게
사실이다.
어떤 중산층 가정도
아직은
충분히 책을 가지고있지 못하다.
독서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이유다.

엄격히 말
하자면,
중산층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그 하나가 ‘형식적중산층’ 이다.
수입과 지출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수치
-돈으로 측정되는 중산층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하나는
‘내용적중산층’ 인데
그 측정기준이 물리적 조건으로서의
자산-돈이 아니라 ‘삶의질’을
가치로 설명하는
중산층이다.
인간세상에서
‘값-돈’ 은 상대적 이지만,
‘가치-진리’는 절대적이다.
상대적인 것으로 끝나는 중산층과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중산층은
비교자체가 안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값과
가치’를 공유하는
중산층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크게 볼 때
우리는 아직 ‘값’ 쪽에
더 치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파트의 크기와 수입,
승용차의 종류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그러하다.
어떤곳에 살던,
무슨차를 타고다니든
그 사람의 ‘정신세계’ 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가지고있는 기준의
하나는,
어떤 중산층 가정이든
제대로 된 ‘서재’ 가 있는집을 최고로 친다.
서재는
인간정신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서재가 있는 삶과 없는삶은
그 근본에서 전혀
다르다.
나머지는
그것을 위한 부차적인
것들이다.
현대세계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소득불균형’이 날로 심대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속성이
‘돈이 돈을버는’
법칙 때문이다.
금융업의 발달은
악성 파생상품까지 개발,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고
있으며
탐욕적인 자산가들은
온갖 사모펀드를 운용,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한줌도 안되는 상위계층과
삼각형의 밑변처럼 퍼져있는
빈곤층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그래도
우리모두는 ‘중산층’이 되기를 희망하며
그 성취를 목표로
한다.
사실은 옳은 방향설정
이다.
나아가서
‘형식적 중산층’에서
‘내용적 중산층’ 으로의 발전도 꾀해야
된다.
인간은
그게 누구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
건전한 중산층이 되어
그 행복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소득불균형 현상이 커지는만큼
우리들의 목표를 향한 노력도 커져야
한다.
그래서
자기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벌어
부자가 된 사람들을
헐뜯지 말고 존경해야 옳다.
그래야
자기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것
이라해도 그 시작은 ‘하나’ 부터다.-by/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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