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 畵 鑑 賞
|
名畵 鑑賞 (2)
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 1853 - 1890 ) 세계 그림 경매 사상 8,250만 달러로 가장 고가였던 작품은 고호가 그린 " 가셰박사의 초상 "이다. 그의 작품 "해바라기"도 3,990만 달러, "붓꽃"도 5,390만 달러나 되는 고가에 팔렸다. 하지만 살아있을 때 그의 그림은 그에게 돈을 주지 못했고, 동생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어렵게 살아야만 했다. 1853년 3월 30일 고호는 네덜란드 시골의 개신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 누이동생과 평생동안 정신적 의지가 되어준 4살 어린 테오, 그리고 또 하나의 남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지만 그들의 친척들은 대부분 화상이었고, 동생 테오도 화상이 되었다. 1880년 고호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브뤼셀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고호가 활동한 시기는 1880년부터 1890년의 약 10년 정도아며. 그 시기 중에 열심히 그림을 그린 시기는 말년 약 5년정도인데, 그동안 800 여점을 그렸다. 하지만 1888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남기고 고호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짓을 하여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였으며 유화물감을 빨아 먹는 발작을 일으켜 몇 번의 정신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림에 더욱 열중하는데 고호의 대표적 그림들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1890년 가셰박사 (고호의 정신병 치료의사)를 만나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듯 했으나 고호는 끝내 자신 속의 광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1890년 7월 27일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쏜 이틀 뒤 위대한 천재화가 고호는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귀를 자른 자화상 (1889년) 강열한 적색과 황색에서 무서운 광기가 느껴진다. 반고흐 자신의 귀를 자른 뒤 곧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2년 뒤인 1890년 권총자살로 37살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프랑스 북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있는 고호와 테오의 묘
고호와 테오 1890년 7월 27일 오베르성당 뒤쪽에 있는 밀밭에서 고호는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쏘았는데 다행히도(?) 탄환이 심장을 비껴나가 그는 가슴을 움켜쥔채그의 다락방으로 돌아와 몸을 누인다.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그를 여인숙의 라부가 발견하였고 닥터 가셰가 급히 달려온다. 이튿날,파리에 있던 테오가 가셰의 편지를 받고 오베르로 왔는데 그날 밤 고호는 의식을 잃었고 7월 29일 새벽 1시30분.. 테오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서른일곱, 고통스러웠던 그의 삶을 마감한다. 고호가 죽은지 6개월 후, 형의 죽음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테오가 서른셋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세상은 빈센트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테오는 그와 그의 그림을 이해하고 있어 언젠가 그의 그림이 인정받으리라 확신하고 그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피를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을 나누었던 소울메이트 빈센트와 테오. 세계 미술사에 굵고 깊은 획을 그은 이 형제는 지금 프랑스 북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그가 그린 보리밭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가세 박사의 초상(고호의 정신병 치료의사) (1890년 6월) 세계 그림 경매 사상 8,250만 달러로 가장 고가였던 작품 (1990년 뉴욕경매에서 일본 제지업자에 낙찰) 지금 가격은 1억4천800만딸라로 세계 미술품 가격 6위
붉은 포도밭(1888년) 반고호의 수많은 작품중 유일하게 팔린그림(400푸랑)
12송이 해바라기 (1888년) 평소 해바라기 꽃을 유달리 좋아했던 반 고흐는
1888년 12송이의 해바라기를완성한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화병에 꽂혀있는 12송이의 해바라기를 볼 수 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황혼이 올 무렵까지 해바라기를 그린다’라 적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림 속 해바라기는 제각각 다른 모습이다. 어떤 해바라기는 활짝 피어있으나 또 다른 해바라기는 바닥을 향한 채 시들어가고 있다. 상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 보이는 것을 재빠르게 그려낼 때 포착 가능한 시간의 흐름을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해바라기의 노란색은 반 고흐가 개인적으로 좋아한 색이기도 하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반 고흐는 생-레미에 있는 생-폴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환자실 창밖을 내다보며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반 고흐는 자신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53)'의 작업을 마쳤을 때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품이 소개될 당시 미술계의 반응도 변변찮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1941년부터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상설 작품으로 전시되었으며, 1973년에는 그의 모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고호는 정신병원 입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연의 순리와 숨결을 화폭에 창조한다. 그 그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의 "붓꽃" 연작이다. 붓꽃은 고흐가 1888년 무렵부터 몰두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 고흐는 이 꽃이 사악한 영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자연의 형상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였으며, 그 의미를 담고자 노력하였다.
측백나무가 있는
보리밭(1889년)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1887년)
귀를 자른 자화상 (1889년) 발병 후 2주가 지나 그린 이 그림은 차분하고도 기품있는 고흐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푸른 밤공기 속에 가스등 불빛에 비쳐진 카페의 바깥을 그린 것으로 파아란 별하늘이 내다 보이고 있다
밤의 카페 (1888년)
석양의버드나무
자화상
우편 배달부 조셉 룰랭의 초상
측백나무
노란집(1888년)
몽마르트의 야채밭 (1887년)
고호의 방 (1889년) 이 그림은 그가 그린 그림중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아를에서 고흐가 품고 있던 희망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 자신은 매우 만족하여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밤의 하얀집 (1889년)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보리밭(1890년)
오베르의 교회 (1890년)
활짝 핀 아몬드 나무 (1888년)
위에서 본 밭가는 농부가 있는 계곡 (1889년)
|
名畵 鑑賞(3)
Auguste Renoir ( 프랑스 ) ( 1841 - 1919 ) 르누아르는 1841년 리모주에서 재봉사 집안에 태어났는데,
가정은 가난하여, 12세 때부터 도기 공방에 첨화직공으로 들어가 일했다. 1876년에는 대작 〈물랭 드 라 갈레트〉를 발표하여 이그림에서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광선과 춤추는 군중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세잔은 자연을 추구했지만, 르누아르는 인간에게 그 흥미를 기울이고 있다. 후기는 오로지 나부(裸婦)를 추구하여 여인의 육체에 한없는 아름다움을 찾고서는 그 빨간 색조로써 순화된 작품을 남기고 있다 . 빨강, 노랑, 파랑등의 색깔을 선명하게 칠하여 색채 화가라 불리였고, 특히 적색의 표현에 뛰어나 근대 최대의 색채 화가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뛰어난 색채가로서 190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만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작하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피아노 치는 여인 (1875년)
피아노 치는 소녀들 (1892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르누아르의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 중 걸작으로 손꼽히며 많은 미술평론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라고 한다
두 자매 (1881년) 르누아르는 1881년에 이 걸작을 완성였다 배경은 센 강 옆 마을에서 영업 중이던 레스토랑 의 테라스다. 봄의 아름다움과 젊음의 생기발랄함을 축하하고 있는 두 자매는 기법적으로나, 구성적으로나 르누아르의 대역작이다. 두 소녀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었으며 뒤로는 생기발랄하게 흔들리고 있는 나뭇잎들의 풍경이 깔끔한 윤곽을 보여주면서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앙리오 부인 (1876년) 그림 속 여인이 너무 아름다워 한눈에 반해 버렸다. 당시 파리 연극계 최고 스타였던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의 배우 앙리오 부인에게 르누아르는 '하늘에서 온 천사 같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줄리 마네의 초상 (1898년) 전시된 그림 중 우울한 그림이 있다면 이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줄리 마네는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딸로 이 그림은 줄리의 어머니 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바느질하는 마리 (1882년)
이랜느 카앙 단베르양의 초상 (1880년) 은행가인 루이 카앙 단베르 씨의 귀여운 막내 딸인 그녀의 투명한 피부와 다소곳이 모아진 두 손,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수줍은듯한 두 눈은 보는 이의 마음에 애잔스러운 심상을 부여한다. 초상화,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과 아이들의 생기 발랄함을 눈부시게 빛나는 색체 표현으로 화폭에 담아내었다.
샤루팡티에부인과 아이들 (1878년)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1876년) 르누아르의 최고의 걸작이라 손꼽히는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는 몽마르뜨 언덕 풍차 근처 작은 정원에서 열리고 있다 . 금발의 홍조를 띤 여인들은 환하게 웃으며 남성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춤을 추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없이 안무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무지개처럼 빛나고, 캔버스 곳곳에는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1881년)
아스니에르의 센강변 (1879년)
샤투의 노젓는사람들 (1879년)
베네치아 산마르코 (1881년)
와그몬트의 장미공원 (1879년)
농장에서 (1878년)
목욕하는 여인들 (1887년)
Badarzewska - 소녀의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