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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결혼식

최 낙출 2016. 9. 26. 18:12

용감한 결혼식

오래간만에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끝난후

딸이 결혼하게 됐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집안에서

재원 소리를 듣던 그 딸은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후

국내의

외국인회사에 입사해서 다니고 있으며

내가 알기에도 나이가 제법많은 노처녀다.

 

그 친척은

내게 메모를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준비가 됐다고 하자

딸의 결혼날자와 시간,

그리고 장소를 불러줬다.

내가 청첩이 올텐데

메모까지 할게 뭐냐고 하자

청첩은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 남부지역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에서 가족과 친척,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만 모여 조촐한

결혼예배를 드리게 됐다는 것이다.

 

조금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때부터

그 결혼식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왜냐하면

관행’ 과는 거리가 먼,

약간은

파격적인 결혼식이 될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친척도

사실은 평범하게 사는 분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도 아닌데

그런 파격적인

결혼식을 올리게된 사연이 궁금했다.

 

관혼상제에 관한한

아직도 우리사회는

인습에서 벗어나기 어렵기에 더 그랬다.

 

 결혼당일,

네비를 따라가 도착한 그 교회는

논과 밭사이에 있는,

빨간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예배당 이었다.

 

 

작았지만 아담했고,

무엇보다 교인들이 소박하고 친절했다.

그들은 분주히 오가면서

결혼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예배당 내부는 깨끗했고

이미

결혼예배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서울의 예식장을 기준한다면

10분의 1도 안되는 꽃으로 장식을 했는데

첫눈에도 그게

전문가의 솜씨임을 알수있었다.

 

주례목사는 투박하지만

진솔한 말로 예식을 진행했으며,

신랑은 새옷이아닌,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입장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신부의 아름답고 화사한 웨딩드레스는

친구가 사서

단 한번 입었던것을 빌렸다고 했다.

 

주례사는 간단했지만 감동적 이었고,

테너가 부른 축가는 ‘you raise me up’ 으로

깊은 울림과 함께 격조가 느껴졌다.

 

기념사진은

신랑의 친구가

자기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결혼예배가 끝난후,

그 교회 교인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대접받았다.

 

차진 쌀밥,

맛이 뛰어난 소고기 무국,

그리고

몇가지 반찬과 떡이 준비되어 있었다.

음료는 물 이었다.

 

식사가 끝난후

모두에게 커피가 제공되었다.

 

친척의 얘기를 들으니,

예물과 예단은 처음부터 없기로 했으며

예식장 비용은 지불되지 않았다고 했다.

 

모인 사람들도

채 백명이 안되었으니

예배당에서 치르게 된 이 결혼식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그 비용이 200만원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정보회사인

‘듀오 휴먼라이프 연구소’ 는

최근 2년안에

결혼한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비용실태를 조사, 발표한바 있다.

 

주택마련등 주거비용이 1억 8천,

예물장만에 1,670만원,

예단마련에 1,555만원,

예식장 관련비용이 1,594만원,

평균 2억 5천만원이 기준이었다.

 

200만원과

2억5천은 충격적인 대비가 될 터이다.

신랑 신부는 그들이 평소 즐기던

동해로의 기차여행을 떠난다고 했으며

신혼여행 후에는

이미 신랑이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고 했다.

 

신접살림은

특별히 장만할것이 없으며

필요한 것은

양가 부모님 댁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조달한다고 했다.

 

나는 식사후

친척으로부터

이렇게 파격적인 결혼식을 올리게된

사연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다.

신랑도 나이가 많은편 이었으며

보수가 높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젊은 두 사람은,독립심이 강했으며

자기들 능력안에서 실질비용으로,

허례허식없이 조촐하고

실속있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했으며

시골에 있는

이 아름다운 교회를 발견,

예식을 허락받았다는 것이다.

 

결혼적령기에 있는 젊은이들의 40%가

2억5천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거나 안하고있는것과

대조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단이었다.

 

 

처음에는 양가 부모들도

그들의 계획에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건

너무나 파격적이고 생소한 것이기에

선뜻 동의할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의 진심을 알게되었고,

무엇보다

부모들도 ‘노년’을 준비해야 되는데

자기들 결혼이 부담이 되는 것이

싫다는 입장을 고수, 설득했다는 것이다.

 

사실 두 젊은이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비교적 나이들어

늦은결혼을 하게되었기 때문에

명분보다는

실리쪽을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시종일관

그 시골교회에서의 결혼예배는

신선하고 감동적 이었으며

특히

두 용기있는 젊은이들이 돋보였다.

 

그들은 물론,

그 부모들도 모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 이기에

이런 파격이 가능했을 것이며

특히

부모세대가 이 결혼에 동의한 것은

상당한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인습과 관행’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결혼식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결혼적령기에 있는 젊은이의 40%가

평균 2억5천이 소요되는 결혼비용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안한다고 한다.

 

사정은 이해할수 있지만,

사실은

‘인습과 관행’ 의 노예인 셈이다.

남들의 눈 때문에

파격적인 결혼식을 못한다면

남의 눈으로 나를 살고있다는 얘기다.

그게 ‘체면문화’ 의 큰 덫이다.

 

우리의 결혼문화는

‘예식장’을 가지고있는 장사꾼들이

부추기는 면이 아주크다.

 

그들은

판이 커질수록 이익이 많기 때문에

온갖 술수로 당사자들을 기만하고 있다.

돈있는 사람들은

그 커진판을 감당할수 있지만

없는 사람들은 그 덫에 갇혀

결혼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식의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하나의 결혼문화로 정착되어

수많은 젊은이들과

부모들을 옥죄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 잘못된 큰판을 깨는데

필요한게 전정한 용기다.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자기의 분수에 맞는 결혼식을 올릴수 있다.

결혼식 자체는 형식이며

그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형식을 절대시 하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두사람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처음부터 ‘파격’을 전제로 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이며

나머지는 모두가

부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반대하는

부모들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자기들의 진심을 드러내 보이자

부모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2억5천이 명목비용이라는 점을 알았다.

그런 형식적낭비에

갇힐수 없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은퇴하는

부모들에게 짐이 되는것도 싫었다.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노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알거지가 되어

노년을 맞이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그것을 피하고 싶었다.

그들이 용기가 있다고 말 하는 것은

이러한 파격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

결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상당한 신념과 자기철학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임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이 훌륭한 것이다.

 

두사람 모두 많은수입이 있기 때문에

집장만도 빠른시일 안에 이룰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결혼문화도 바뀔때가 지났다.

언제까지

이런 잘못된 인습과 관행에 묶여있을 것인가.

무릇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가 가지고있는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화려하고 낭비가 심한 호화결혼식도,

시골교회에서의 조촐하고 실속있는 결혼식도

모두가 당사자들의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차이일 뿐이다.

 

있는사람이

호화판결혼식을 가지는 것은 있을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없는 사람이 그것을 쫓아가는일은

무리일 수밖에 없으며

쫗아갈수 없으면

결혼자체를 미루거나 안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 이라는

절대적 조건이 물질에 갇혀

‘상대적’ 인 것이 되고 있다.

 

결혼이

두사람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절대적인 것이라면

‘결혼식’ 이라는 상대적 조건은

얼마든지 변형될수 있는 형식일 뿐이다.

 

내용이 먼저이고 형식은 나중이며

중요한 내용을 위해

종속적인 형식은

얼마든지 바뀔수 있고 바뀌어야 옳다.

 

 사실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본질에서 그 차이는 크지않다.

그걸 꺼내 쓰는 사람이 있고

못쓰는 사람이 있을뿐이다.

 

아름다운 시골 예배당에서의

조촐한

결혼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많은생각을 했다.

 

어쩌다

우리는 체면문화에서 살게 되었는가.

왜 실속보다는

그토록 명분에 집착하는가.

 

결혼식에 소요되는

그 많은돈의 대부분이 낭비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인습’은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

나는 돈이없어 결혼을 못하고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이 용기있는 결혼식을 전하고 싶었다.

 

그 두 젊은이는 가능한데

다른 젊은이들은 왜 불가능할까.

 

젊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일에

도전할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건

젊은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아닌가.

자기들 분수에 맞는

조촐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은

이를 결단하는 용기일 뿐이다.

 

 

달걀을 깨지않고는 오물렛을 만들 수는 없다.

-서양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