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의 길◆
2010년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각종 영화제에 ‘프로택트 팔찌’ 를 끼고 나타났다.
그 팔찌는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보석 브랜드인 아스프레이-asprey 가 졸리의 주문을 받아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외신들이 일제히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낸 이 팔찌는 뱀모양의 형상으로 디자인 되었으며,
졸리는 ‘뱀 모양의 수호신이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있다’ 고 설명했다.
서양문화권에서 뱀은 의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후 국 내,외에 이와 유사한 디자인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유명한 팔찌를 디자인 한 사람은 한국인이다.
김수미(40)씨가 그 사람으로, 서울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후 좀더 과감하고 대담한 금속공예를 배우고 싶어 이탈리아에 유학했다.
1999년부터 불가리보석을 제조하는 ‘발렌자 크로바’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2003년 부터는 아스프레이에서 일했다.
그때 그녀의 작품이 카타르 국왕에게 선택받아 회사의 경사가 된 일도 있었다.
cartier-까르띠에, 이 유명한 보석점은, 네델란드 사람인 루이 프랑스와 까르띠에 (1819-1904) 가 프랑스 파리에 세운 브랜드 명이다.
명실상부하게 세계보석의 유행을 이끌어 나가는 회사이며, 처음에는 보석류만 취급했으나 지금은, 시계, 향수, 필기구, 라이터, 가죽제품, 식기류, 안경, 스카프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 하고있다.
전세계에 180여개의 직영매장과 1만2천여개의 점포를 지닌 세계최고의 디자인,제조업체로 성장했다.
2009년도에 헤드헌터로부터 김수미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지금 까르띠에 본사 ‘하이 주얼리 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작품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짜리를 만들고 있다.
보석업계에서 모든 디자이너들의 최종목표는 까르띠에다.
동양인인 김수미씨가 극소수의 선택받은 최고수준의 디자이너가 된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창의적인 전문성’ 때문이다.
모든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할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증명 하고 있는것이다.
WTO는 세계무역기구 이며, 1986년 시작된 우르과이라운드의 다자간 협상은, 1947년이래 세계무역질서를 이끌어온 GATT-관세와 무역에관한 일반협정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 체제를 다자간 무역기구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추진하게 된다.
1994년 4월, 모로코의 말라케시에서 우르과이라운드 각료회의가 소집되었고 여기에서 우르과이라운드 최종 의정서, WTO설립협정, 정부조달 협정에 합의, 서명한후 1995년 1월 1일 GATT를 대신하는 세계무역기구로 정식 출범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2012년 현재 153개국이 가입돼 있다.
WTO의 설립목적은, 세계교역의 증진이며,
주요업무는, 국가간 경제분쟁에 대한 판결권과 그 강제적 집행이며, 규범에 따라 국가간 분쟁이나 마찰을 조절하는 중요하고도 막강한 국제기구다.
한국인 김의기(58)씨는, WTO의 시장접근국에서 선임참사관으로 직원 3명과 함께 2개의 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다.
WTO는 소수정예를 원칙으로 하고있으며 시장접근국도 총 12명으로 한국, 미국, 스위스, 영국, 중국, 브라질, 멕시코, 콜로비아, 짐바브웨의 국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선임참사관인 김의기씨의 주요업무는, 상품 원산지규정의 통일화 업무와 관세가 적절히 부과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일이다.
WTO회원국 대표들은 대부분 영어로 발언하지만 153개국에서 온 대표들은 영어라고 믿기 어려울정도의 서로다른 영어로 말한다. 아프리카식, 남미식 영어등이 그런것이다.
김의기 참사관은, 재직16년동안 안락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영어를 들으면서 잠을잔 일이 부지기수다.
이제 그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수 있으며 회의의 발언내용을 요약, 다음날이면 참석자들에게 배부할수 있다.
영어와 WTO의 업무에 대한 철저한 파악과 전문성이 있었기에 이 거대한 국제조직 에서 선임참사관으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것이다.
UNESCO.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1945년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주최로 열린 유네스코창설 준비위원회에서 44개국정부 대표에 의해 헌장이 채택되었으며
1946년 11월. 20개 서명국가들이 헌장비준서를 영국정부에 기탁함으로서 최초의 유엔전문기구로 발족했다.
현재 193개국이 가입돼 있으며,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유네스코의 주요활동은, 문맹퇴치, 초등의무교육보급, 난민교육, 생물, 해양,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 인권문제에 관한 연구, 분석, 개도국의 통신시설, 정보시설 지원, 언론인 육성지원, 세계문화유산지정, 전통문화 보전지원, 문헌의 번역, 소개등이다.
본부의 직원은 2.200여명이며, 60개지역 사무처에 500여명이 근무하고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에 가입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소해(32)씨는, IT벤처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좀더 넓은세상에서 일하고싶은 마음으로 외교통상부가 담당하고 있는 JPO (국제기구 초급전문가 과정)에 지원, 합격했다.
1년간 유네스코 파리본부에서 일한뒤, 2005년엔 네팔사무국으로 파견됐다.
수도 카투만두 인근의 고원지대엔 전기도, 수도도, 전화도 없었다. 꼬박 1년간 학생숫자와 같은 기초통계를 정리하는일에 매달렸다.
컴퓨터는 커녕 전기, 전화도 없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일해야 했으며 자료를 주고받을 우편도 없는 열악한 형편이었다.
JPO과정을 마친뒤 네델란드 헤이그의 에라스무스대학에 개설된 국제개발학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이 과정을 거친후 2009년 9월 유네스코의 정식직원이 되어 파리에 있는 본부에서 교육프로그램 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유엔은 세계정부라고 보면된다. 모든분야에 관련기구가 하나씩은 있기 때문에 관심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는 결심이 중요하다.‘ 이소해씨가 들려주는 체험적인 충고다.
G.E. 1878년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전기조명회사가 GE의 모태다.
1892년 에디슨 종합전기회사와 톰슨 휴스톤 전기회사가 합병하여 제너럴일렉트릭, GE를 만들었다.
1896년 12개 종목을 편입해 만든 ‘다우존스’ 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미국 콘네티컷트주 페어필드에 본사를 두고있는 GE는, 발전과 수처리, 석유와 개스, 항공, 운송, 헬스케어 사업과 금융서비스사업 및 조명가전 사업등으로 다각화 되어있다.
한국에서는 1976년 GE코리아가 공식출범한후, 발전설비, 항공기엔진, 산업설비, 의료기기, 플라스틱 가전 및 금융분야(현대캐피탈, 현대카드)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주희진(39)씨는,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사가 처음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어릴때부터의 그녀의 꿈은 비행기였다.
1996년 아시아나항공의 정비사 모집에 응모, 합격후 항공기 엔진에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후 1999년 공군의 정비창 군무원을 지원, 대구 제81항공 정비창에서 전투기 엔진을 정비하는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가 됐다.
민간항공기 엔진과 전투기 엔진까지 정비할수 있는 실력을 쌓은뒤, 항공기정비업체인 GE 온 윙 서포트 코리아에 입사했다.
on wing support 는 엔진이 비행기에 붙어있는 상태에서 수리하는 고난도 작업 이다.
세계3대 항공기엔진 제작사인 GE에는 110명의 엔진정비사가 있으며 이중 여자는 단 2명, 한국여자로서는 주희진씨가 유일하다.
그녀는 지금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GE엔진을 정비하고 있다. ‘한국인의 프로정신에 대한 평가가 좋다.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해서든 깨끗하게 끝내기 때문이다.‘ 자기분야 최고전문가인 주희진의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한후, 한국의 경제전반 발전속도가 둔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를 ‘감속시대’ 라고 부른다.
2001-2007년간의 연평균 경제성장율은 4.7%. 1인당 GDP증가율은 9.8%를 기록했지만 2008년 이후 4년간 이 수치는 1.7%로 줄어들었다.
국제금융위기, 급격한 노령화, 산업구조개편이 큰 원인으로 지적되긴 하지만 근자의 유럽경제위기와 구매력감소, 이어 나타나는 중국제조업의 후퇴는 우리의 중간재 수출에 결정타를 가하고있다.
2010년기준, 우리나라 고용시장에 1년동안 쏟아져 나오는 구직자는 약60만명, 이중 25만명 정도가 취업하고 있으며
A급 일자리라고 말하는 대기업, 금융기관, 공기업같은 일자리는 6만개에 불과하다.
구직자중 10%정도만이 원하는 직업을 갖는셈이다. 정규직이 줄어드는 일자리는 미래가 불투명한 비정규직이 채우고있다. 만성적인 고용불안시대가 바로 지금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UN에 가입한 1991년 이후,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도 꾸준히 늘어 1999년 139명이었던 것이 2011년기준 398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국제기구의 한국인직원 비율은 여전히 낮은편이다.
UN의 193개 회원국중 경제규모 11위인 우리의 유엔예산 분담금비율은 2.26%인데 반해 유엔사무국 진출비율은 전체직원의 0.26%에 불과하다.
주요유엔산하 기구에 한국인 비율이 1%를 넘는곳이 한군데도 없어 아직 ‘과소진출국’ 으로 분류되고 있다.
분담금비율에 따라 직원을 채용하는 기준에서 본다면 아직 제밥도 못찾아 먹고 있다는 얘기다.
모두가 같은줄에 서서 같은 스펙을 쌓고있다면, 거기엔 경쟁력이 있을수 없다.
다시 모두가 같아지기 때문이다. 일류대학, 대기업, 좋은배우자, 높은급여라는 단선(單線)사회에 집착하는한, 성공할 확률은 계속 좁아지고 있다.
이제는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한 누구라도 ‘백수’ 가 될 가능성을 안고사는 시대다.
본인이든, 부모든, 이제는 고정관념-사고방식의 ‘틀’ 을 깨야한다. 눈을 밖으로 돌리고 전혀다른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거기엔 아직 충분한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고 하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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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향 유네스코 본부 국장 1993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으로 근무중, 1997년 유네스코에 채용돼 유네스코 유아교육과장으로 8년간 일했다.
파키스탄사무소 부소장, 짐바브웨 사무소장을 거쳐 현장지원국 부국장을 역임했다.
유에스코본부는 2012년 4월5일, 유네스코 평화, 지속가능발전 교육국장에 최수향 박사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인 여성이 유네스코 본부국장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UN은 글자그대로 세계정부다. 그 수장인 사무총장은 한국인 반기문이다.
지구의 중앙은행인 세계은행, 그 수장인 총재는 한국인 김용이다.
두 개의 거대한 국제기구에 동시에 수장을 배출한 나라는 우리한국밖에 없다.
-반기문과 김용-
국제기구나 세계적인 기업에 진출해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우수한 공통점은 ‘창의적 전문성과 근면함’ 이다.
한국인 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덕목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 장점을 세계를 향해 펼칠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게 ‘전문가의 길’ 이다.
말이 없는 사람은 걸어서 가면 된다.- 로마의 격언.
by/yorow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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