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진단.◆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고통스러운 때’ 를 만나게
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미
고통스러운 때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으며
앞으로 경험하게 될것이다.
맑은날이 있으면 흐린날이 있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있는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있듯이,
인간은 즐거움 보다는
고통을 통해 더 많이 성장하게
된다.
고통의 시간이 ‘자기성찰의 때’ 이기
때문이다.
쾌락을 통한
자기성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은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일어설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OECD국가중 자살율이 가장
높다.
경제적인 이유만 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다.
2012년 미국의 갤럽이
148개국에서 1000명씩 선발,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97위였다.
세계경제 10위권 국가지만
자살율과 행복감에서 중, 하위권에 서
있다.
GDP 2만불이 해결할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진단(診斷)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살펴본후 내리는
의학적 판단이며
그 판단에 따라 질병을 치료하게
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그 어느때 보다도
진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경제의 성장동력이
멈췄고,
청년실업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흙탕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사회적 갈등은 그 폭을 더해가고
있다.
공교육이 붕괴된것은
오래전이고,
종교까지 부패,타락으로 내 달리고
있다.
나는 우리사회에서
‘어르신’ 으로 불리는 구
세대다.
우선
연령적으로 70대중반이니
‘노파심’ 으로 쓴소리를 좀 해도 될
나이다.
일제의 식민지시대에 태어나
일본 소학교에
다녔고,
광복후에는
인민학교에서 김일성장군을
배웠다.
야밤에
인민군을 피해 38선을
넘어온후
다시
초등학교에서 이승만 박사를
배웠으며
중학생때는 참혹한 6.25 전쟁을
겪었다.
자유당의 춥고배고픈 전방부대에서
사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복교한 후에는 4.19 데모를
했고,
5.16과 5,18을 아프게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1970-80년대의 압축성장 시대엔
신발을 신은채
가마니 위에서 자며 공장을
건설했고,
월차, 년차, 휴가도 모르고
일만했다.
글자그대로
‘파란만장-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얻은게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수 있고,
내일을 전망할수 있는 확고한
안목이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옥죄고 있는게 ‘정치판’ 이다.

정치판이 개판이 된 데에는
수많은 설명이 있을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의회민주주의’ 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토론문화가 없기 때문에
매사에 주먹이
먼저나가고,
의회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이 마음대로
안되면
의사당을 떠나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그건
의사당 안에서 졌다는
의미다.
이 파행은
‘다수결’ 에대한 불복으로
이어진다.
다수결에 승복 못한다면
그건 깨진
민주주의다.
의회민주주의의 정치체제가
우리의 노력과 피땀으로 쟁취한것이 아니라
광복과 함께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변고가
생겼다.
의회민주주의 근간은
토론이고 타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안에서 정책으로 풀어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전문성’ 이 요구된다.
다음이
덜 떨어진 이데올로기
싸움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은 구경도 못해본 위인들이
불만의 도구로
북한을 활용하는
종북세력이
되었다.
이런
이적행위가 척결되지 못하는것은
그 위험성이 피부에 닿지않기
때문이며
우리의
사법체계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보불안의 비싼 대가를 치를때는
이미 버스는
떠난다음이다.
6.25전쟁을 겪은세대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고있다.
1970-80년대의
압축성장은,
글자 그대로 압축성장일
뿐이다.
비 정상적인 경제성장 이었다.
그래서
기적이라고
하는것이다.
그 무서운 관성이
2%대의 저성장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게
지금의 사정이다.
‘성장동력이 멈췄다’ 고
말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얘기하면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정상속도로 돌와온 것으로 보는게
옳다.

골드만 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도미니크
윌슨은
‘한국은 고성장국가에서 중성장국가로 전환한
가장 훌륭한 사례’ 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우리는 ‘절약’ 을 몰랐고
과소비와 낭비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됐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
절약의 미덕을 가르치지
않았다.
앞으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과시형, 모방형 소비는
설 자리가
없을것이다.
그런 소비대신
자신의 취미,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실속형으로 바뀔수
밖에없다.
양적인 성장과 삶의
스타일에서
질적인 성장의 삶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국으로 발전한 사회가
공통적으로 보여주고있는 패턴이
그러하다.
사태의 변화를 빨리 파악한 사람들은
빠른적응으로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빚’ 속에서 허우적
거릴것이다.
다시는 압축성장의,
찬란한 금빛의 시기는 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그래서 더욱
요청된다.
지금
우리의 ‘사회적 특징’ 은
무엇일까.
가치가 아니라
값만 추구하는 사회가 됐다는
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불량식품은
‘간접살인’ 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라전체가
비상한 각오로 전기를 아껴야 하는
‘절전사태’ 의 뿌리는
원전마피아의 검은돈이 원인이다.
부패가
이 정도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인간이 가치를 버리고
값만 추구하면 축생과 다를게
없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도덕과 윤리로
본능을 억제할줄 알기
때문이다.
그 기능이 사라지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돈은 소금물과 같다’ 는게
옛 로마의 격언이
있다.
그 많은돈을 가지고도 더 큰 탐욕에 빠져
감옥에 갇힌 재벌이 벌써 몇
명인가.
인간은
돈 만으로는 행복해 질수없는
존재다.
내것을 내어 남에게 주면서
오히려
기쁨을 느끼는것은 인간밖에
없다.
그것을
가치의 세계라고
부른다.
값과 가치의 균형을 찾는일은
우리모두의 큰 숙제가 아닐수
없다.
그 첩경이 바로 교육인데
공교육의 붕괴는
이 기능이 사라졌다는
위험신호다.
병은 깊어지고 있는데 자각증세가 없는위험,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는 곧 ‘연예계’
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연예인’ 이 꿈인 나라가
한국이다.
지금
모든 한국인들은 떠
있다.
아무도 땅에 발을 붙이기를
거부한다.
그건 손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초학문에 지원자가 줄어들고
3D업종에 일할 사람이
없다.
건물로 말하면
‘기초’ 가 없어지고 있는
중이다.
기초에 빈칸이 생기고 균열이 생기면
아무리 크고
화려한 건물이라 해도 붕괴될수
밖에 없다.
TV가
우리사회에 끼친 폐해는
필설로는 모두 설명할수
없다.
사회의 기반을 허무는,
폐륜과 불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선동하고 충동하는
사악한 힘이 너무
오래동안
사회전체를 흔들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 앞을 떠나지
못한다.
마약처럼,
아니
그보다 더 무섭게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이 ‘상업주의’
다.
일찍이 법정
께서는
‘광고에 저항하라’ 고
말씀했다.
TV와 상업주의 합작품이 바로
광고다.
속도와 편리만을 좇다보면 ‘깊이’ 를
잃게된다.
깊이는 곧
무게다.
그게 바로 스마트폰의
폐해다.
자기무게가 없는 인간은
산들바람에도 넘어지게 돼
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오직 사람만이
재산이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성장을 할수 있었던것은
‘교육받은 인력’ 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할 때
가장 염려되는 대목이 바로 ‘교육’
이다.
지금의
학교교육은 살아있는 인성교육이
없다.
700만여명의 학생들은
가정에서, 학원에서
입시기계로 ‘사육’ 되고
있을뿐이다.
공교육의 붕괴는
‘미래’ 를 담보할수 없다는 무서운
신호다.
학력인풀레는 ‘미스메칭’ 과 연결,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으며
이는 고비용의 대표적인
사례다.
청년백수가
300만인데,
중소기업은
외국인 근로자를 한명이라도 더 배정 받기위해
텐트를 치고 밤샘을
한다.

올바른 인간은
‘인성교육’ 을 통해서만
배출된다.
지금
우리사회엔 그 인간이 줄어들고
있는중이다.
학교를 졸업한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수학은
구구단과 가감승제뿐이다.
그런데도
아직 ‘국,영,수’ 에 목을 매고있는게
우리교육이다.
교육이
백견대계라는 말은 지금도
진리다.
이 세상에는
끝까지 썪지 말아야 할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종교다.
宗敎는
글자그대로 근본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가 썪으면 악취가 더
심하다.
종교가 썪었다는것은 무슨
뜻인가.
종교의 고귀한 가르침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종교에 종사하고 있는 인간은 변할수 있으며
그게
곧 종교의 변질로
비치게
된다.
결국
종교는 그대로인데
인간이 변해서 딴것이 된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종교의 가장 큰 타락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요구에 따라 변질되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기복신앙이다.
고등종교가
굿집과 점집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그 다음이
물량주의,
모든
고등종교는 똑같이 청빈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보이는것에 집착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한국종교는 크게봐서
4류다.
따라서
그 수준으로는
인간구원의 과업을 수행할 수가
없다.
딴것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일찍이
본 회퍼는 옥중에서
말했다.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 교회가 나타날
것이다.’
스코틀랜드 지방의 어떤
BB,
아침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여러명의 영국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안이 너무
어두웠다.
나는 벽에서
스위치를 찾아내 전등을
켰다.
그런데
우리 음식을 가지고 온 주인은
다시
스위치를 내려 전기를
껐다.
여러 BB에서 같은 일을 겪은바
있다.
그들은
글자그대로 지독한 구두쇠
였다.
GDP는 우리보다 높지만
절약이 철저히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전기대란 때문에
전국적으로 절전캠패인이
한창일때,
우리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옆단지의 정원에는
주변에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분수 2개가 계속 가동하고
있었다.
전등과 모터는
전력소모에서 비교가
안된다.
‘절약’ 을 모르는 세대가 지금의
대세다.
모든곳에 과소비와 낭비가
넘쳐난다.
그 끝은
무엇일까.
경제처럼 정직한 시스템도
달리없다.
눈보라속의 베짱이는
결코
멀리있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나처럼
파란만장한 삶을산 노인의
눈에
지금 우리사회는
어떤 ‘과도기’ 에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광복이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천박한 G.I. 문화를 시작으로
서구의 문물은 홍수처럼 우리를 덥쳤다.
맥도널드 햄버거는 그 상징이라고
할수있다.
지금의
우리들은 몇천년을 지녀왔던
고유의 정신세계를
잃어버렸다.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상실한 인간은 천박해 지고
오직 돈, 물질만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정체성을 상실한 인간은
결코
물질만으로 만족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집단공허’ 가 바로
그것이다.
새 가치관의 정립은
새 정체성의 문제이며
이는
교육과 국가 리더십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 두가지가 모두
없다.
정말 위기는 바로 그
점이다.
이제 우리모두는
지금의 ‘우리의 처지’ 를
바로보는,
지혜롭고 겸손한 눈을 가져야
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새롭게 일어서서 출발할수
있다.
‘나’부터 그렇게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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