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만에 값지고 귀한 정론을 보게 되어 나누고 싶어
올려봅니다
암울한 祖國에 부치는 재미교포의 두번째 편지
-적폐청산은 그 震源地(진원지) 민주당에서부터-
최 응
표(뉴욕에서)
도쿄대학의 김상중 교수는 그의 책 <고민하는 힘>에서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고, 고민하는 것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조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를 고민하고, 민족을 고민하고, 역사를 고민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양심의 힘’이 필요한 때입니다.
거짓말을 크게 할수록 크게 성공하고, 북한을 위해 누가 더 크게 우느냐에 따라 출세 길이
정해지는 참담한 조국의 현실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입니다. 전에 몇 번 인용한 적이 있지만 로마인들의 ‘眞實을 듣는
귀’가 하도 부러워 다시 인용합니다.
“사람들이 행한 罪惡은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살아있지만, 善行은 그 사람의 뼈와 함께 무덤에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습니다. 건국대통령과 산업대통령의 功績(공적)은 무덤에 묻히고, 김대중과 노무현이
남긴 積幣(적폐)는 여전히 우리 머리 위를 배회하며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 안토니의 연설을 되새기며
느껴지는 것은 善과 惡, 거짓과 진실을 분별할 줄 아는 로마인들의 지혜와 그들이 가진 ‘진실을 듣는 귀’가 우리에게는 왜
없는가, 라는 自愧感(자괴감)입니다.
시저를 암살한 브루터스의 거짓선동에 현혹되어 야심가 시저를 단죄해야 한다고 외치던 군중은
안토니의 연설을 듣고 다시 선과 진실편에 섰습니다.
시저가 제왕의 꿈을 지닌 야심가이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역설하며 “내가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 이었다며 “여러분은 시저가 죽어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시저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라는 브루터스의 거짓선동은 로마군중을 매혹시켰습니다. 촛불난동세력과 청와대 주사파 세력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시저를 야심가라고 비난하며 성토하던 군중들은 안토니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일등국민과 삼등국민의
차이입니다.
“---브루터스는 시저가 야심가였다고 합니다. 시저가 과연 야심가였습니까? 시저는 외적을 토벌하고 그 몸값을 받아 이
나라의 국고를 가득 채웠습니다.그 과정에서 한 푼도 자기 것으로 챙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야심에서 우러난 행동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려
울 때, 시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이것이 야심입니까? ---.
안토니는 계속해서 진실을 말하고, 시저의 공적을 하나하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자 군중은 시저의 업적에 감사하며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서 브루터스 일파를 제거하는 데 동참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청와대를
점령한 뒤 적폐청산 완장 차고 마구 칼질을 해대는 청와대의 주사파 무리들과 다른 점이며, 천년 로마를 지탱해 준 힘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탄핵과정에서 벌어졌던 현상과 너무 닮아 가슴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나는 로마인이다!>라는
말이 가장 자랑스러운 말이었던 것도 로마인들만이 가졌던 ‘진실을 듣는 귀’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반 에셀은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노’라며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지금은 청와대를 점령한 주사파들의 나라허물기로부터 우리의 존엄성(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고, 우리가 서있는 곳(대한민국)을 지키며, 우리의 행복(사람답게 사는 권리)을 지키기 위해 분노하고 저항할
때입니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그 엄청난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도 보트피플 106만이라는 세기적 비극을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월남패망의 원인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혼돈 때문이었다는 월남 마지막 공사이던 이대용 장군의 증언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월남은 힘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물론 정부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국가의 온 신경망을 장악한
간첩들에 의해 망했고, 그 간첩들과 공산주의자들은 하나같이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해 민족공조를 내세워 반미를 외치고 선량한
국민을 선동해 극성맞은 데모를 주도하며 대중기반을 넓혀 나간 그 선동주의자들에 의해 망했다.”는 이 역사적 증언을 기억하자는
말입니다.
그 당시 월남에 침투해 활약한 간첩은 인구의 약0.5%인 5만 명, 1967년 월남 대통령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쭝딘주
역시 대표적인 간첩이었습니다.지금 청와대주변은 안녕하신지, 국민의 양심으로 철저하게 점검할 때입니다. 패망 직전의 월남과 닮아도 너무 닮아서
하는 말입니다.
‘문명의 충돌’로 잘 알려진 새무얼 헌팅턴은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저서에서 문화가 정치 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960년대 초 경제사정이 비슷했던 한국과 아프리카의 가나를 그 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30년 뒤, 가나의 경제성장률이
한국의 15분의 1 수준에 머문 엄청난 차이를 헌팅턴은 문화의 차이에서 찾았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이 중요시 해온 전통적 가치인
예절, 검약, 근면, 교육, 극기정신, 기강 등을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문화적 가치로 생각한 것이 가나와의 격차를 벌인 주요 원인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우리의 전통적 문화유산마저 촛불혁명의 광풍 속에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들의
막말, 거짓말, 무례, 살인적 폭언,욕설 등의 저질문화에 의해 역사발전의 동력인 전통적 문화가치는 물론 인성교육까지 소멸되어가는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고민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나라는 도덕적 힘을 가진 나라라고 합니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법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도덕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독일통일의 단초를 제공한 동독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인들의 대 각성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너진 국민의 도덕, 윤리관이 제자리를 찾을 때, 올바른 시민사회가 형성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사파세력이 청와대를 점령한 뒤 저지른 최악의 적폐는 역사 죽이기입니다. 국가존망을 좌우하는 국가안보와 애국심이 바른
역사 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강대국의 흥망’으로 잘 알려진 폴 케네디 교수는“금후의 50년을 전망하려거든
과거 50년을 뒤돌아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지난 역사는 건국시대를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넘어 번영의 시대를 이룩한 찬란한
성공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괴담의 震源地(진원지)인 민주당이 청와대를 점령했다는
사실입니다. 적폐청산의 0순위 대상이 적폐청산 완장차고 국정을 농단하는 사실자체가 6.25 이후 최대의 국가위기란 말입니다.
더욱
한심스런 것은 괴담을 듣는 귀는 무한대로 진화하는 반면 진실을 듣는 귀는 갈수록 퇴화의 길로 치닫고 있는 국민성의 변질입니다. 진실을 듣는 귀가
없는 사람에겐 밝은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양심이 마모돼 인간적 고통, 사회적 고통, 국가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물론 선한
마음도 머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後漢(후한)의 王充(왕충)은 “선한 마음이 없는 자는 흑백을 분간하지 못하고 선악을
혼동하여 정치를 혼란케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괴담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국민의 분별없는 마음(정신)을 지적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명한 선택이 나라를 살린다는 말은 이제 평범한 진리가 되어 있습니다. 고마움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면 마모된 양심은
다시 살아나고 사회는 정직해지고 나라는 발전하게 돼 있습니다.
그럴 때 진실을 듣는 귀는 열리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저절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고마움을 모르고 배신의 시대를 살고도 계속 번영을 이어간 국가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혼란은 패배한 뒤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뒤에도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로마의 역사’라고 일러준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곱씹어봐야 합니다.
어찌 로마의 역사뿐이겠습니까? 시오노 나나미의 이 한마디에 가슴 뜨끔함을 느끼며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뒤돌아봅니다. 이래서 역사의 교훈이 무섭다는 것인지 모릅니다. ‘민족의 서사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언젠가는 반드시 망한다’는 경고가 가슴에
와 닿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국가적 혼란과 민주주의의 위기는 민주주의가
실종돼서가 아니라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주어졌기 때문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께서 ‘정치는
인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허용돼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인격 없는 모리배들이 정치를 틀어쥐고 앉았으니 나라꼴이 이 모양으로
굴러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인격은 교양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교양은 양심의 바탕위에 쌓여진다고 합니다. 지금 청와대
점령군 어느 구석에서 양심과 교양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왜 ‘한국적 민주주의’를 역설했는지, 패배 뒤의
혼란보다 승리 뒤의 혼란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지나친 민주주의가 독버섯을 키운다는 사실도 청와대 점령세력을 통해 알게
됐다면 오히려 저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요?
적폐의 원조는 현 집권세력 민주당입니다. 대한민국 국회를 김일성 주사파의 혁명투쟁
교두보로 만들어준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재인을 비롯한 민주당 세력은 적폐청산 대상 0순위 아닌가요?
이제 지키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선택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입니다. 진실을 듣는 귀가 열려 국민의 양심이 국가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면 다 같이 살 수 있겠지만, 거짓과
괴담을 듣는 귀가 계속 진화돼간다면 대한민국은 여기서 멈추게 될 것입니다.
적폐청산 완장을 바꾸어 차는 날, 대한민국은 제 모습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을 위해 로마인들의 선악 분별의 지혜와 진실을 듣는 귀를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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