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습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퇴계 선생은 생각했습니다.
윤리는 무엇이고 도덕은 무엇이냐?
젊은 저 아이를 수절시켜야 하다니.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시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니
이튿날 퇴계 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습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마저 절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퇴계 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안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나는 할 말이 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 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습니다.
몇 년후 퇴계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날이 저물기 시작했으므로 한 집을 택하여 하루 밤을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퇴계 선생이 좋아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더욱이 간까지 선생의 입 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집 주인도 나와 입 맛이 비슷한가 보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 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 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올라온 것입니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퇴계 선생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와서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며 주었습니다.
신어보니 퇴계 선생의 발에 꼭 맞았습니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퇴계 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않고 살겠구나.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계 선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퇴계 선생은 이렇게 며느리를 개가시켰습니다.
이 일을 놓고 유가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퇴계 선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퇴계 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윤리를 깨뜨리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며 퇴계 선생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감히 어떻게 그시대에 이런생각을 하셨을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신지요?